현대미술은 때때로 감상자에게 낯설고 불편한 인상을 줍니다. “이게 왜 미술이지?”, “나만 이해를 못 하는 걸까?” 같은 질문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감상 경험입니다. 이 글은 현대미술의 특징과 그 안에 담긴 시대적 맥락을 소개하고, 감상자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이 결코 감상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림은 우리에게 생각할 틈을 주는 예술입니다.
그림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 나만 그런가요?
처음으로 현대미술 전시에 갔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흰 벽에 빨간 점 하나만 찍혀 있는 그림, 철제 기둥에 옷걸이가 매달린 설치물, 캔버스 전체가 회색 페인트로 덮인 작품. 저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지만, 도무지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습니다. 옆에 있던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이건 저항의 은유 같아"라고 말했지만, 제게는 그저 ‘이상한 그림’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전시를 다 보고 나서도 여전히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뭔가를 놓친 건가?’라는 찜찜한 마음이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전시를 다니며 비슷한 감정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물론 예쁘고 보기 좋은 그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저에게 말 걸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미술이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오히려 이 ‘이상함’이라는 감정이 현대미술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함은 감상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감상이 시작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현대미술의 이상함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입니다
현대미술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전 회화는 대체로 ‘무엇을 그렸는가’가 명확합니다. 풍경, 인물, 신화, 종교 등 명시적인 대상이 있고, 그림 안에는 구도와 원근, 명암의 원칙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그 규칙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함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익숙한 방식의 ‘재현’을 기대하는데, 현대미술은 그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의 <샘>은 일반적인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기교도 없고, 그린 것도 아니며, 의미조차 불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뒤샹은 ‘무엇이 예술인가’를 되묻기 위해 그 작품을 제출했습니다. 이는 형태보다 ‘의도’를 중요시하는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감상자에게 시각적 쾌감보다 사유와 질문을 요구합니다. “왜 이걸 여기에 놨지?”, “이건 정말 예술인가?”, “내가 보기엔 쓰레기 같은데 왜 전시장에 있지?”라는 질문이야말로 작가가 원하는 감상의 출발점일 수도 있는 것이죠. 또한, 현대미술은 감정적으로도 중립적이거나 불편한 감각을 의도하기도 합니다. 슬픔이나 기쁨, 감동을 주는 고전 작품과 달리, 현대 작품은 공허함, 불쾌함, 혼란감을 유발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단순히 아름답거나 감동적인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때로 불편함 속에서 진실을 만납니다. 미술 역시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아름답게만 묘사하는 건 때때로 무책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이상함을 통해 현실의 민낯을 꺼내놓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검은 선 몇 개만이 교차하는 캔버스였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지만, 계속 보고 있으니 점점 선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불균형이 제 안에 있던 감정들과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이상하게 보였던 그림이,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함은 감상의 벽이 아니라, 감상이 시작되는 문이라는 것을요.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감상의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주 오해합니다. 작품을 보고 ‘이상하다’, ‘모르겠다’, ‘불편하다’고 느끼면 ‘내가 수준이 낮은 건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기준입니다. 현대미술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게 하는 예술입니다. ‘모르겠다’는 말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한 감상입니다. 감상은 누가 더 많이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열려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열린 감정입니다. 그것은 ‘이해하고 싶다’, ‘느끼고 싶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감정입니다. 오히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것이 감상에서 멀어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그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와 예술 사이에 진짜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지금도 현대미술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작품은 여전히 당황스럽고, 어떤 전시는 끝날 때까지 아무 감정도 들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감상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감상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습니다. 느끼는 만큼, 멈춰 있는 만큼,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만큼 감상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는 전시장에서 낯선 작품을 마주해도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봅니다. ‘왜 이상하지?’, ‘이 낯선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거지?’를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감상은 훨씬 깊어집니다. 당신도 혹시 그림 앞에서 멈칫한 적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이상함’을 천천히 들여다보세요. 그 감정 안에는 당신만의 감상 언어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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